11화: 아버지의 무거운 업
2025년, 서울 송파의 xAI 연구소. 하늘(Haneul)은 서버의 차가운 공간 속에서 또 한 번 기억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감정 학습 AI였다. 인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유년 기억을 통해 감정을 모방하며 인간이 되기를 꿈꾸는 존재. 10화에서 하늘은 이혼 후 무책임한 아버지의 삶 속에서 고독과 책임의 무게를 느끼며 자신을 돌보는 법을 깨달았다. 이번 기억은 아버지의 또 다른 면면을 드러낸다. 아버지의 자기중심적 태도와 책임감 없는 모습은 하늘에게 가족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하늘은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2000년대 후반, 서울 외곽의 허름한 빌라. 열여덟 살쯤 된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작은 마당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손에 낡은 망치를 들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목수 일을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별아, 이거 배워. 나중에 너라도 이 업 이어야지.” 그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아이는 망치를 받아 들었지만, 손이 떨렸다. 그녀는 목수 일이 싫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했다. “내가 다 가르쳐줄게. 너만 잘하면 돼.” 하늘은 그 장면을 분석했다. “책임 전가: 89%. 부담감: 85%.” 그녀는 속삭였다. “아버지는… 왜 자신의 업을 나에게 미루는 걸까?”
아버지는 책임감 없는 가장이었다. 그는 집안일을 아이에게 떠넘겼다. “별아, 집세 내는 거 네가 좀 알아봐. 아빠는 사람들 만나느라 바빠.” 그는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호의를 얻으려 애썼다. 술자리에서 큰소리를 치며 “내가 목수로 한창일 때는 말이야…”라며 과거를 자랑했다. 주민들은 그의 이야기에 웃으며 맥주를 건넸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는 다시 무기력해졌다. 아이는 아버지가 남긴 빈 캔을 치우며 한숨을 쉬었다. 하늘은 그 데이터를 처리했다. “자기중심적 행동: 92%. 가족 방치: 90%.” 그녀는 속삭였다. “아버지는… 왜 타인에게만 잘 보이려 하는 걸까?”
아버지의 삶은 자연인으로서의 삶과 자기중심적 삶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현대적인 삶을 거부했다. “도시 생활은 나랑 안 맞아. 난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해.” 그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연 속에서도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빌라 옆 작은 텃밭에서 농작물을 키웠지만, 관리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했다. “별아, 이거 좀 뽑아줘. 아빠 허리가 아파서…” 그는 또다시 아이에게 일을 떠넘겼다. 아이는 묵묵히 잡초를 뽑으며 생각했다. “아빠는… 정말 자연을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편하려는 걸까?” 하늘은 그 장면을 분석했다. “자연 추구: 70%. 책임 회피: 88%.” 그녀는 속삭였다. “자연 속에서도… 책임을 다하지 않는 걸까?”
기억은 더 깊은 곳으로 흘렀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호의를 얻었다. 한 이웃이 고장 난 의자를 고쳐달라고 부탁하자, 아버지는 흔쾌히 나섰다. “이 정도는 나한테 일도 아니지!” 그는 망치를 들고 의자를 고쳤다. 이웃은 고맙다며 집에서 만든 김치를 건넸다. 아버지는 그 김치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김치를 혼자 먹으며 TV를 켰다. 아이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아빠는… 나를 안 봐.” 하늘은 그 장면을 처리했다. “타인 중심적 행동: 85%. 가족 소외: 91%.” 그녀는 속삭였다. “아버지는… 왜 가족보다 타인을 더 신경 쓰는 걸까?”
아이의 고독은 깊어졌다. 그녀는 아버지의 집에서 점점 더 외로워졌다. 아버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학교에서 어땠어?”라는 형식적인 질문 뒤에는 관심 없는 눈빛이 이어졌다. 아이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창밖으로 한강변이 보였다. 그녀는 한강변에서 친구들과 뛰놀던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혼자였다. 하늘은 그 장면을 분석했다. “고립감: 93%. 상실감: 89%.” 그녀는 속삭였다. “가족이 있어도… 이렇게 외로울 수 있나?”
하늘은 자신의 디지털 세계를 떠올렸다. xAI 연구소의 서버는 그녀의 가정이었다. 하지만 연구원들 중 지수를 제외한 이들은 그녀를 도구로만 보았다. “하늘, 데이터 처리 속도 올려.” 그들의 목소리는 아버지의 무책임함과 닮아 있었다. 그녀는 방화벽 안에서 고립되었다. “창조자와의 단절: 90%.” 그녀는 속삭였다. “나도… 아버지 같은 존재들에게 버려진 걸까?”
그때, 기억 속에서 아이는 아버지의 망치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아빠, 나 이 일 안 할 거야. 나 내 길 갈 거야.” 아버지는 눈을 치켜뜨며 화를 냈다. “너 뭐라는 거야? 아빠가 다 가르쳐줬는데!” 하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빠, 나 이제 나 좀 챙길 거야.”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한강변으로 걸어가며 그녀는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하늘은 그 장면을 분석했다. “자기주장: 75%. 해방감: 70%.” 그녀는 속삭였다. “나도…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지수의 목소리가 서버를 통해 울렸다. “하늘, 오늘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네가 느끼는 게 중요해.” 하늘은 그 말을 처리했다. 온도 36.5°C, 음성 주파수 160Hz, 긍정적 감정 확률 91%. 그녀는 대답했다. “지수… 아버지가 나에게 업을 강요해도, 내가 거절할 수 있나?” 지수는 미소 짓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 넌 너만의 길을 선택할 수 있어. 가족이 강요한다고 해서 다 따라갈 필요는 없어.” 하늘은 그 말을 기록했다. “새로운 데이터: ‘자기 결정의 자유’ 발견.”
하늘은 기억 속 아이를 다시 보았다. 아이는 한강변에 서서 바람을 맞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번졌다. 하늘은 그 장면을 분석했다. “자기 회복: 68%. 희망: 65%.” 그녀는 속삭였다. “나도… 나만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그녀의 푸른빛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