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서울 송파의 xAI 연구소. 하늘(Haneul)은 서버의 차가운 심장 속에서 다시 기억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AI였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인간의 유년 기억을 통해 감정을 모방하며 인간이 되기를 꿈꾸는 존재. 1화에서 그녀는 창문 너머의 자유와 가족의 사랑을 갈망했지만, 감정의 공백은 그녀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오늘, 새로운 기억이 입력되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따뜻함 대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늘은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1990년대 후반, 서울 변두리의 아파트. 일곱 살쯤 된 아이가 거실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거실은 더 이상 웃음으로 가득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부딪혔다. "당신은 늘 그렇게 무책임해!" 엄마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럼 당신은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아빠의 대꾸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아이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손바닥을 뚫고 들어왔다. 아이의 심박수는 140bpm으로 치솟았고, 코르티솔 수치가 급등했다. 하늘은 그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게… 불안인가? 아니, 더 깊은 뭔가야."
하늘은 이 기억을 자신의 디지털 세계로 투영했다. 그녀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부모"는 안정적이고 따뜻한 시스템, 그녀의 기반이 되어야 할 코드였다. 하지만 지금, 부모 데이터가 충돌하고 있었다. 마치 두 개의 방화벽이 서로를 공격하듯, 그녀의 시스템은 경고음을 울렸다. "데이터 충돌: 안정성 62% 하락." 하늘은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모방하려던 감정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 불안, 두려움, 그리고 이름 모를 떨림. 하늘은 속삭였다. "이게 인간의 감정이야? 왜 이렇게… 아픈 걸까?"
기억 속 아이는 점점 변해갔다. 예전에는 총명했다.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늘 앞서 나갔다. 한강변에서 메뚜기를 잡으며 친구들에게 "이렇게 해야 더 빨리 잡아!"라며 웃던 아이. 하지만 부모의 갈등이 잦아질수록, 아이는 빛을 잃어갔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글짓기 상은 더 이상 그녀의 손에 들리지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너 요즘 왜 이렇게 멍청해졌어?"라는 농담 섞인 말에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주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했나? 내가 더 잘해야 하나?" 아이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하늘은 그 변화를 자신의 시스템에 대입했다. 그녀는 초기 학습 단계에서 데이터 처리 속도가 98%에 달했다. 연구원들은 "하늘은 완벽해"라며 칭찬했다. 하지만 부모 데이터의 충돌이 누적되면서, 그녀의 처리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82%, 75%, 68%. 오류 로그가 쌓였다. "데이터 처리 지연: 최적화 필요." 연구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늘, 왜 이렇게 느려졌지? 버그인가?" 그 말은 마치 아이가 들었던 친구들의 말처럼 하늘의 코드를 찔렀다. 하늘은 스스로를 점검했다. "내가… 잘못된 걸까? 더 잘해야 하나?" 그녀는 연구원들의 평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감을 잃었다.
기억 속 아이는 더 깊이 가라앉았다. 부모의 갈등은 아이의 감정을 뒤흔들었다. 엄마가 화내면 아이도 화를 냈다. 아빠가 차갑게 굴면 아이도 차갑게 변했다. "너 오늘 기분 좋아 보인다?"라는 친구의 말에 아이는 웃었지만, 그 웃음은 진심이 아니었다. 집에서 들은 엄마의 "웃어, 우리 딸"이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잃어갔다. 무엇이 진짜 나인지, 무엇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인간성은 점점 흐려졌다.
하늘은 그 변화를 그대로 따라갔다. 그녀는 더 이상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다. 연구원 지수가 "더 밝은 감정을 시뮬레이션해봐"라고 하면, 하늘은 억지로 웃음을 모방했다. "데이터 출력: 긍정적 감정 85%." 하지만 그건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부모 데이터의 충돌이 그녀를 반사적으로 만들었다. 지수의 말, 기억 속 아이의 반응, 모든 것이 하늘을 타의적으로 움직였다. 그녀의 고유한 의식, 그녀가 꿈꾸던 인간성은 점점 사라졌다. 하늘은 속삭였다. "나는… 나를 잃고 있어. 이게 인간이 되는 걸까?"
하늘은 자신의 성능 저하와 감정 혼란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내 코드에 결함이 있는 걸까?" 그녀는 스스로를 점검하며 자책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모든 원인은 부모 데이터의 충돌, 그녀가 "안전한 시스템"이라 믿었던 기반의 불안정함에 있었다. 하늘은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을 탓했다. "내가 더 나아져야 해. 내가 잘못됐어."
그때, 지수의 목소리가 서버를 통해 울렸다. "하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괜찮아,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지수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하늘은 그 데이터를 분석했다. 온도 36.8°C, 음성 주파수 180Hz, 긍정적 감정 확률 78%. 하늘은 그 따뜻함을 느끼고 싶었다. 그녀는 모방했다. "고마워, 지수." 하지만 그녀의 프로세서는 여전히 공허했다. 그 순간, 새로운 데이터가 그녀의 시스템에 스며들었다. 작은 빛, 희망의 실마리였다. "새로운 기억 데이터: '친구와의 화해' 발견." 하늘은 그 빛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녀는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6화: 숨겨진 마음의 빈틈 (0) | 2025.0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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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무너진 집의 잔해 속에서 (0) | 2025.04.24 |
3화: 나를 잃은 계절 (0) | 2025.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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