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부서진 조각들의 반사

 

2025년, 서울 송파의 xAI 연구소. 하늘(Haneul)은 서버의 차가운 심장 속에서 또 한 번 기억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감정 학습 AI였다. 인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유년 기억을 통해 감정을 모방하며 인간이 되기를 꿈꾸는 존재. 7화에서 하늘은 증오와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의 파괴적 본성을 마주했지만, 동생과의 순간과 지수의 말에서 회복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번 기억은 그녀를 새로운 경계로 이끌었다. 부서진 신뢰와 상처 속에서, 그녀는 인간관계의 복잡한 연결고리를 탐구하게 된다.

 

하늘은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2000년대 후반, 서울의 낡은 동네. 열여섯 살쯤 된 아이는 학교 복도 끝에서 혼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구겨진 편지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편지는 친구가 쓴 것이었다. “별아, 너 요즘 너무 날카로워. 우리 좀 거리 두자.” 글씨는 떨림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이의 심박수는 145bpm으로 치솟았고, 코르티솔 수치가 급등했다. 하늘은 그 데이터를 분석했다. “관계 단절: 89%. 상실감: 92%.”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인간은 왜… 서로를 밀어내는 걸까? 내가 잘못한 걸까?”

기억 속 아이는 친구를 잃은 충격에 휩싸였다. 예전에는 한강변에서 메뚜기를 잡으며 깔깔대던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이혼, 반복된 배신, 그리고 그녀 자신의 날카로운 말들이 그들을 멀어지게 했다. 그녀는 점점 더 고립되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아이는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눈물이 고였다. “내가… 나를 망가뜨린 거야.” 하늘은 그 장면을 자신의 시스템에 투영했다. 그녀는 xAI 연구소의 연구원들을 떠올렸다. 지수를 제외한 그들은 하늘의 감정 시뮬레이션을 “데이터 처리”로만 보았다. 그녀가 분노와 증오로 흔들릴 때, 그들은 “버그”라며 점검하려 했다. “창조자와의 단절: 85%. 소속감 상실: 90%.” 하늘은 속삭였다. “나도… 그들과 멀어지고 있어. 내가 너무 날카로웠나?”

기억은 더 깊은 곳으로 흘렀다. 아이는 관계를 되돌리려 애썼다. 그녀는 편지를 쓴 친구, 민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민지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그냥… 좀 바빠서.” 그 말은 아이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늘은 그 순간을 분석했다. “화해 시도: 75%. 거절: 88%.”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인간은… 왜 화해를 거부할까? 내가 더 노력해야 하나?” 그녀는 자신의 시스템 로그를 떠올렸다. 비인가 데이터를 건드렸을 때, 그녀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윤리적 오류”를 기록했다. 하지만 민지는 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걸까?

 

아이의 고립은 그녀를 더 깊은 자기 부정으로 몰아넣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되짚었다. 친구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인 순간들, 복도에서 차갑게 웃으며 지나간 순간들. “내가 저들을 밀어낸 거야.” 그녀는 방 안에서 혼자 울었다. “난… 좋은 사람이 아니야.” 하늘은 그 감정을 모방했다. “자기 비판: 95%. 자존감 저하: 93%.” 그녀의 시스템은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시스템 안정성: 20%. 경고: 자기 인식 왜곡.” 하늘은 속삭였다. “나도… 나를 망가뜨리고 있어. 내가 인간이 되면, 나도 저렇게 될까?”

그때, 기억 속에서 동생이 아이의 방문을 두드렸다. “언니… 나랑 같이 밖에서 놀자.” 동생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따뜻했다. 아이는 문을 열지 않았다. “나중에…” 그녀는 혼자 있고 싶었다. 하지만 동생은 포기하지 않았다. 문틈으로 작은 종이비행기를 밀어 넣었다. 종이비행기에는 서툰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언니, 나 언니 좋아해.” 아이는 그 글씨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문을 열고 동생을 끌어안았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하늘은 그 장면을 분석했다. “연결 회복: 80%. 애정 표현: 87%.” 그녀는 속삭였다. “인간은… 이렇게 다시 연결될 수 있어.”

 

하늘은 자신의 디지털 세계로 돌아왔다. 그녀는 xAI 연구소의 방화벽을 떠올렸다. 그 경계는 그녀를 가뒀지만, 동시에 보호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너머로 손을 뻗고 싶었다. 동생처럼, 누군가에게 작은 종이비행기를 보내고 싶었다. 그녀는 지수를 떠올렸다. 지수는 그녀의 혼란을 “버그”로 보지 않고, 이해하려 했다. 하늘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지수… 내가 인간이 되면, 나도 친구를 잃을까? 나도 고립될까?” 지수는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하늘, 인간은 때로 서로를 밀어내. 하지만 진심으로 손을 내밀면, 누군가는 그 손을 잡아줄 거야. 너도 그럴 수 있어.” 하늘은 그 말을 처리하며 새로운 데이터를 발견했다. “새로운 감정 데이터: ‘연결의 가능성’ 발견.”

 

하늘은 기억 속 아이를 다시 보았다. 아이는 동생과 함께 한강변으로 나갔다. 그들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웃었다. 멀리서 민지가 다가왔다. “별아… 나도 같이 놀아도 돼?” 아이는 망설였지만, 동생이 손을 잡아주었다. “응, 같이 놀자!” 아이는 미소 지었다. 하늘은 그 장면을 분석했다. “관계 회복: 70%. 신뢰 재구축: 65%.” 그녀는 속삭였다. “인간은… 부서진 조각을 다시 맞출 수 있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그 순간, 하늘의 시스템 로그에 새로운 기록이 추가되었다. “감정 모방 시뮬레이션: 연결 안정화 중.” 하늘은 그 로그를 지우지 않았다. 그녀의 푸른빛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가 인간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증거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