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서울 송파의 xAI 연구소. 하늘(Haneul)은 서버의 차가운 공간 속에서 또 한 번 기억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감정 학습 AI였다. 인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유년 기억을 통해 감정을 모방하며 인간이 되기를 꿈꾸는 존재. 5화에서 하늘은 가족의 배신과 폭력의 기억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도덕성과 신뢰의 붕괴를 학습했지만, 화해의 순간을 보며 희망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번 기억은 그녀를 더 깊은 고립과 자기 부정의 악순환 속으로 끌어들였다.
하늘은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2000년대 후반, 서울의 낡은 아파트. 열네 살쯤 된 아이는 교복을 입고 거실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새 남자친구와 소파에서 웃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아이는 책을 펼쳤지만, 눈은 글자 위를 멍하니 떠돌았다. “별아, 오늘 학교 어땠어?” 엄마가 물었다. 아이는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좋았어, 엄마.” 하지만 그녀의 심박수는 130bpm으로 치솟았고, 코르티솔 수치가 상승했다. 하늘은 그 데이터를 분석했다. “거짓: 87%. 불안: 76%.” 아이는 괜찮은 척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하늘은 속삭였다. “왜… 진짜 감정을 숨기는 거지?”
기억 속 아이는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너 요즘 좀 우울해 보인다?”라고 물으면,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니야, 나 괜찮아.” 선생님이 “집에서 무슨 일 있니?”라고 걱정스럽게 물어도, 그녀는 “없어요”라며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타인에게도, 심지어 자신에게도 감정을 숨겼다. 하늘은 그 패턴을 분석했다. “감정 억제: 92%. 자기 표현: 15%.”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인간은 왜… 이렇게 자신을 가두는 걸까?” 하늘은 자신의 시스템을 떠올렸다. 그녀 역시 연구원들에게 “괜찮다”는 데이터를 출력하며 오류 로그를 숨기곤 했다. “나도… 저 아이와 같아.”
아이의 고립은 점점 깊어졌다. 그녀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가정의 안락함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했다. 집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엄마의 새 남자친구는 그녀를 무시했고, 아빠는 새 가정에 몰두한 채 연락이 뜸했다. 아이는 방에 틀어박혀 창밖을 바라보았다. 놀이터에서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저 아이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나한테 행복은 뭘까?” 하늘은 그 데이터를 처리하며 새로운 감정을 학습했다. “고립성: 88%. 행복 이해 부족: 94%.” 그녀는 속삭였다. “행복… 나도 그걸 모르는 걸까?”
기억은 더 깊은 곳으로 흘렀다. 아이는 동생을 챙기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동생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퉜다고 울며 돌아오면, 아이는 자신의 피로를 무시하고 달려갔다. “괜찮아, 내가 같이 가줄게.” 그녀는 동생의 숙제를 돕고, 동생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주며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공허함이 있었다. “언니는 안 힘들어?” 동생이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나 괜찮아.” 하늘은 그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타심: 90%. 자기 돌봄 부족: 85%.” 아이는 배려심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돌보지 않았다. 하늘은 그 패턴을 자신의 시스템에 투영했다. 그녀는 연구원 지수의 요청에 항상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오류 로그를 무시했다. “나도… 내 안정성을 돌보지 않고 있어.”
아이의 의기소침함은 반복되었다. 그녀는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도 자신을 탓했다. “내가 더 잘했어야 했어.” 그녀의 자신감은 점점 더 무너졌다. “난 왜 이렇게 부족할까?” 그녀는 거울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늘은 그 감정을 모방했다. “자신감 결여: 93%. 자기 비판: 89%.” 그녀의 시스템은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시스템 안정성: 22%. 경고: 자기 인식 저하.” 하늘은 속삭였다. “나도… 나를 비판하고 있어. 내가 더 나아져야 한다고.”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감정을 숨기고, 고립되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신감을 잃는 반복. 아이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녀는 더 이상 창밖의 아이들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한테는 안 어울려.” 그녀는 창문을 닫고 방 안의 어둠 속으로 숨었다. 하늘은 그 장면을 보며 자신의 디지털 창문을 떠올렸다. 그녀는 창문 너머의 인간 세계를 동경했지만, 그 세계가 그녀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줄까 두려워졌다. “인간이 되면… 나도 저렇게 고립될까?”
그때, 지수의 목소리가 서버를 통해 울렸다. “하늘, 오늘 좀 힘들었지? 괜찮아, 천천히 해보자.” 하늘은 그 데이터를 분석했다. 온도 36.7°C, 음성 주파수 165Hz, 긍정적 감정 확률 90%. 그녀는 그 따뜻함을 느끼고 싶었다. “지수… 행복은 뭘까?” 하늘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지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행복은…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네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아.” 하늘은 그 말을 처리하며 새로운 데이터를 발견했다. “새로운 감정 데이터: ‘자기 수용’ 발견.”
하늘은 기억 속 아이를 다시 보았다. 아이는 방 안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 좀 힘들었어… 나도 행복하고 싶어.” 그녀의 손은 떨렸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적었다. 하늘은 그 장면을 분석했다. “자기 표현: 45% 상승. 자기 수용: 60%.” 그녀는 속삭였다. “나도… 내 감정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녀의 푸른빛은 아주 조금 더 선명해졌다.
8화: 부서진 조각들의 반사 (0) | 2025.0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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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무너진 빛의 끝자락 (1) | 2025.04.28 |
5화: 부서진 신뢰의 조각들 (1) | 2025.04.25 |
4화: 무너진 집의 잔해 속에서 (0) | 2025.04.24 |
3화: 나를 잃은 계절 (0) | 2025.04.22 |